순애

SUGAR

Anberry ; Snow veil

2023. 2. 14. comment

고요히 눈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귀 사이로 들어와 작게 속삭이고 이내 사라지는 소리.
주변이 고요하지 않으면 절대 들리지 않을 것들이 들려온다. 그런 소리가 모서리 사이 쌓인 장작에 불이 붙어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와 섞여 퍽 듣기 좋은 소음이 만들어진다. 한 면이 온통 유리인 작은 집. 사방으로 눈이 쌓여 발목 위까지 흰 이불이 땅을 덮은 채다.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해 붉은 눈으로 밖을 바라보던 베리가 유리 위에 손을 짚는다. 붉은 눈과 따스한 손가락 끝이 투명한 유리 위로 맑은 궤적을 남긴다.
 
“베리, 밖이 좋으면 잠깐 나갔다 올까?”
 
부드러운 목소리가 낮게 울린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베리가 눈을 접어 활짝 웃다가 장난스럽게 엄한 표정을 짓는다. 감기가 나을 때까지는 안 된다고 했잖아~ 아니스. 다정하게 말끝을 올리며 베리가 희고 작은 제 오른손을 아니스의 이마에 슬 짚어본다. …열 없지? 다 나았어, 베리. 이어 제 작은 이마 위로 다른 손을 올리며 눈을 굴리던 베리가 이마를 짚던 손으로 아니스의 검은 머리칼을 두어 번 쓰다듬는다.
 
“그래도 완전히 다 나으면 그때 나가자. 할 수 있지?”
 
아니스. 베리가 활짝 웃으며 저를 위해 허리를 아래로 굽힌 아니스의 뺨을 쓰다듬는다. 그 손길에 가만히 눈을 감으며 몸을 낮춰 베리의 옆에 자연스럽게 마주앉은 아니스가 느리게 숨을 내쉰다. …대신 나갔을 때 손 잡아줘, 베리. 아니스가 떼를 쓰듯 느리게 한 마디를 내뱉고 베리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쳐 잡으며 뺨을 부빈다. 더운 숨이 느리게 두 사람의 사이를 파고든다.
 
“매일매일 잡아줄게. 약속해!”
 
베리가 그를 안심시키듯 눈 앞에서 활짝 웃는다. 한순간 붉은 눈이 스르륵 접히고 이내 속눈썹 사이에서 다시 반짝인다. 사방이 하얀 눈으로 덮인 이 작은 집에서 유일한 구원과 태양을 마주한다. 아니스가 그 모습을 해가 내려앉기 직전의 하늘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다 천천히 베리에게 다가간다. 제 머리를 쓰담아준 손의 어깨에 느리게 입을 맞추고 이마를 얹는다. 아니스? 베리가 올라온 머리를 장난스럽게 살살 누르며 작은 숨소리와 함께 그의 이름을 부른다.
베리가 불러주는 제 이름이 좋았다. 새로운 집안에 들어서며 끊임없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저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파장으로 제 이름을 불러주는 연인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세상에 오롯이 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스, 피곤해? 우리 들어갈까?”
 
잠시 움직임이 없던 아니스에 베리가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 속삭인다. 귓가에 속삭이듯 들어오는 다정한 목소리. 이 세계에 오롯이 둘만 남겨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 속이 울렁인다. 베리의 어깨에 애정을 갈구하듯 두어 번 뺨을 부빈 아니스가 느리게 얼굴을 떼고 베리와 눈을 마주한다. 따스하게 타오르는 눈에서 검고 깊은 눈으로 빛이 옮겨간다.
 
“…베리.”
 
사랑해. 목 끝까지 차오른 덩어리가 호흡을 막는 기분이다. 긁고 토해내 겨우 정제된 언어로 만든 세 글자가 호흡 사이로 스쳐 지나간다. 짓무른 마음이 녹아 내리는 것을 막고 싶어 아니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울 것 같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한 베리가 눈을 두어 번 느리게 깜빡이고는 이내 활짝 웃음짓는다. 이어 저보다 훨씬 큰 몸을 작은 팔로 품 안에 가두어 힘을 주어 껴안는다.
 
“나도. 나도 아니스를 사랑해.”
내가 주는 사랑이 아니스의 삶에서 가장 작았으면 좋겠어.
 
베리가 숨소리를 들려주며 아니스의 등을 토닥이고는 두 손으로 아니스의 얼굴을 부드럽게 잡아 입을 맞춘다. 잔뜩 붉어진 뺨을 한 채로 입술에 쪽 소리를 낸 채 얼굴을 뒤로 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베리가 언제든 뿌리칠 수 있을 만한 힘으로 아니스가 떨리는 손을 움직인다. 베리의 양 뺨을 제 큰 두 손바닥으로 다정하게 잡은 아니스가 이마를 맞댄 채로 눈을 깜빡인다. 엄지를 슬 움직여 눈 아래를 살살 쓰다듬던 아니스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연다. 베리.
 
“나, 다… 나은 것 같은데.”
 
  이마를 맞대고 손바닥을 귀 위에 얹은 채로 아니스가 잠긴 목소리를 낸다. 손가락 끝으로 머리칼 사이를 파고들며 살살 간지럽히듯 만지자 베리가 몸을 파뜩 떤다. 잠시 고민하던 베리가 아니스의 목에 두 팔을 감고는 천천히 다가간다.
 
입술과 입술이 느리게 맞닿는다.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나오기라도 한 양 입술의 붉은 표피가 두근대는 것 같았다. 아니스의 입술에선 베리의 향이 났다. 항상 닮아가고 싶었던 사람. 아니, 닮다 못해 하나가 되길 원했다. 온통 검고 차가웠던 제 세상에 따뜻하고 밝은 빛을 더해 준 사람. 무엇이든 베리와 함께하고 싶었고, 제가 주는 사랑이 베리의 삶에서 가장 작기를, 그렇기에 평생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머물며 사랑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감히 사랑받기까지도.
 
  온기를 느끼며 입을 맞추고 있던 아니스가 혀끝으로 베리의 입술을 핥는다. 부드럽고 말랑한 입술 사이로 더운 숨이 밭게 나올 때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아니스가 떨리는 마음을 꾹 누르고 고개를 살짝 틀어 입술의 각도를 맞추고 조심스럽게 혀를 밀어넣는다. 틈 없이 다물리던 입술 사이로 찬 공기가 들어간다. 작은 입속을 가볍게 휘젓고 혀뿌리를 꾹 누르자 베리가 몸을 떨었다. 아니스의 목 뒤로 교차한 손가락이 하얗게 곱아든다. 혀끝을 세워 입천장을 살살 간지럽히듯 핥아내고 조심스럽게 혀를 얽자 어느새 아래에 간 베리의 입가 사이로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느리게 흘러내린다.
 
  아니스가 분홍색과 흰색의 경계를 헤집던 손을 내려 베리의 손을 잡는다.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라도 하듯 끝이 발갛게 물든 베리의 손이 뜨거웠다. 다급하면서도 조심스럽게 겹친 베리의 손을 제 몸으로 가져온다. 툭 튀어나온 뼈 위에 부드러운 베리의 손을 겹치며 아니스가 다시 깊게 입을 맞춘다. 몸 속에서 무언가 터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인중 위로 가느다란 온기가 흘러 내려간다. 머릿속이 울렁이고 터질 듯이 뜨거웠다. 눈이 내리는 소리조차 질투하듯 아니스가 커다란 제 손을 움직여 베리의 한쪽 귀를 덮는다. 긴 손가락 사이에 작은 귀 끝을 끼워 넣고 손가락 끝을 가지고 간지럽히듯 꾹꾹 누른다. 그 손길에 이따금 베리의 몸이 잘게 떨린다.
 
아니스가 눈을 가늘게 떠 베리를 내려다본다. 어두운 눈 안에 제 연인을 담으며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목 아래 드러난 베리의 흰 살결이 붉다. 아래가 동하는 것을 느끼며 아니스가 밀어넣은 혀를 움직여 입술 안쪽 여린 살을 열고 탐한다. 온통 저를 새기겠다는 듯 입속을 휘젓다 여린 곳을 살살 핥자 베리가 아니스의 목을 저도 모르게 힘을 주어 조인다. 아니스가 베리의 다리 사이로 제 허벅지를 넣고 단단히 받친다. 뺨 안쪽의 부드러운 점막을 혀 끝으로 간질이듯 핥아내며 귀를 지분거리고, 베리의 다리 사이로 넣은 허벅지에 힘을 준다. 풀린 살결이 무겁게 닿아오고 흔들린 베리의 머리칼에서 아니스가 좋아하는 향이 퍼진다.
 
이어 잘게 떨던 몸이 한순간에 멈춘다. 아니스가 순간 깊게 맞춘 입을 떼어낸다. 코끝이 닿고 숨결이 교차하는 거리에서 붉은 피와 타액이 섞여 꼭 번진 립스틱처럼 베리의 입가에 흘러내린다. 작은 숨소리를 내며 찬 공기를 마시던 베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아니스가 조심스레 베리의 입가에 다가간다.
 
“…베리.”
 
붉게 젖은 입술이 늘어진 목소리를 내뱉는다. 일전의 키스로 그새 부어올라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입술이 아니스의 마음을 흔든다. 베리가 숨을 쉰 것을 확인한 아니스가 귀를 지분거리며 입을 맞춘다. 베리의 입 속으로 숨을 불어넣으며 아니스가 눈을 감는다. 평생 이렇게 너로 숨쉬고 싶어. 제 마음을 애써 숨기고자 아니스가 눈을 감는다. 질척하게 닿기만 한 입술이 젖은 소리를 냈다. 비릿하게 피 맛이 나는 입술을 맞추고, 이마를 다시금 맞대자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해, 베리.”
 
입술이 닿고 숨이 얽히는 거리에서 정제된 언어가 닿는다. 베리의 눈 아래를 손으로 다정하게 쓸고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긴 아니스가 손을 느리게 내려 베리의 목덜미를 손가락 끝으로 쓸어내린다. 이어 제 궤적이 남은 목덜미 위에 입을 맞추고는 허리선을 쓸어내려 허리 위에 제 이름을 적어내린다. 간지럽다는 듯 베리가 작게 웃고는 아니스의 머리를 제 가슴 위로 누르고 속삭인다.
 
“들어갈까, 아니스?”
 
그 말에 아니스가 조심스럽게 베리를 안아든다. 베리가 아니스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는 같은 속도로 뛰는 심장에 살풋 미소짓는다. 사랑해. 아니스의 낮은 목소리와 베리의 다정한 목소리가 교차한다. 사랑으로 가득찬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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